지율을 보내며 화엄벌의 가을은 이리도 고운데 지율은 저렇게 가는구나 못내 떨쳐 버리듯 작은 등짝 보이며 저렇게 가는구나. 천성이 이고 사는 하늘은 저리도 맑은데 지율을 보내는 우리 속은 이리도 섧구나 툭 툭 떨어버리듯 돌아서 버리는구나 빈 손 하나로 삭풍을 헤치며 하염없이 걸어도 보고 오만한 빌딩 그늘에서 굶어도 보고 뜨거운 햇볕 아래 큰 바람 장대비 홈빡 맞으며 삼천 번 허리 굽히다 못해 그예 아스팔트에 머리 찧듯 조아리기 백여 리, 발 부르트고 무릎 깨어지고 이마 피멍 들어도 돌아보면 눈에 차는 내 도반들 우리 같이 간다는 든든함 그 하나로 억세 흐드러진 화엄벌까지 왔건만 이제 지율은 오던 길을 돌아 천성의 품을 떠나고 우리 지율을 등지고 천성 속으로 안긴다 떠나는 지율 천성을 떨치지 못해 천성을 떠나듯 남는 우리 지율을 보듬기 위해 천성의 자궁 속으로 든다 우리가 떠나고 지율이 남는다 해도 천성은 늘 그 자리 부처가 그러하듯 천성은 그렇게 그 자리 날 것, 갈 것, 땅 것 온전히 생명 안고 설사 지율이 남고 우리가 가더라도 천성은 생명의 아기집 뭇 생명, 뭇 생명의 혼과 백까지 안기고 품어 줄 부처 천성 지율의 삶이 지율 자신의 것이 아니듯 우리의 삶도 우리 것은 아닌 것을 천성의 허리가 끊기는 날 지율과 천성의 끈도 끊기고 지율과 우리의 끈도 끊어버린다 천성을 우리 가슴에서 끊어버린다. 우리 자신조차 끊어버린다 화엄벌의 가을은 이리도 고운데 천성이 이고 사는 하늘은 저리도 맑은데 우리는 내치듯 지율을 보낸다. 천성의 품에서 서로 보듬고 얼싸안기 위해 지율을 보낸다 천성의 품에서 작은 몸뚱아리 새까만 얼굴 지율을 떠나 보낸다. 꼬마 잠자리 배나온 도롱뇽 함께 지율을 떠나 보낸다. 지율을 떠나 보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