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삼십팔일이 지났습니다. 26층의 높다란 현대건물 앞에 초라하게 쳐진 텐트속에서 한철을 보내면서 저는 많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저는 동네 어귀의 시냇가에서 장어를 잡으러 발목을 적시고 헤매던 아이였으며,  하늘 높이 나르는 나비였으며, 부드러운 땅 속을 기어다니는 땅강아지 였습니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저는 꿈과 추억으로만 다가오는 이 작은 생명들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소음을 견디어 냈습니다.
불과 20년전만 해도 우리 국토는 따뜻하고 공기는 투명하고 물은 맑았습니다. 얼마전 이 곳 시청 앞에서 피부병 투성이의 쥐 한 마리를 보았는데 바로 그 피부병 투성이의 쥐가 미래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누구도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시점에 와 있으면서,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슬픈 산하의 모습을 저는 이곳에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허리를 자르고  이제는 그 심장부를 가르고 가도록 늙은 노모처럼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묵언해 있는 저 말없는 산은 이제 자신이 안고 잇는 많은 생명체를 안고 울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면 그 울음소리와 그 울음의 의미를 누구나 가슴속에 느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산이 아프다는 것을 산이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2003. 3. 14 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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