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쌀 알고 먹읍시다.

2004년 10월 5일 | 활동소식







한국의 고고학자 안승모의 저서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과 분화(학연문화사 1999)” 를 참고, 고고학적 증거를 종합하여 볼 때 중국의 양자강 중류에서 하류지역이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지로 추정되며 이곳에서 재배되던 벼가 양자강 상류 운남을 거쳐 태국 북부에 도입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한편으로는 중국 동해안을 따라 동남북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 야생벼

현재 우리가 재배하는 벼는 어떤 야생종에서 분화 발달해 야생벼에서 재배벼로 다양한 유전적인 변이를 거쳐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재배종의 근연종인 야생벼는 오리자페렌니스 (O.perennis) 이며, 남아프리카에서 인도, 인도네시아, 뉴기니, 남아프리카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이 중 아시아형 (O.p.subsp.balurga) 이 널리 재배돼 1년생의 재배벼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니제르강 중류지역에서 차드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벼와 근연종인 아프리카벼인(O.glaberrima)가 소규모나마 재배되고 있는데, 재배벼와 같은 시기이거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재배됐다고 보고 있다.


▣ 벼의 전파

벼는 원산지에서 서쪽으로 육로를 따라 이란지역을 거쳐 카프카스 지역에 전해졌고, 기원전5~4세기경에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바빌로니아제국과 그 주변에서 재배하게 됐으며, 그후 시리아 및 소아시아 각지의 관개가능지에 보급됐다.

유럽에는 터키를 거쳐 발칸 반도에 도입됐고, 아라비아 사람들의 유럽정복시대에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스파니아 (스페인) 에는 아라비아인들에 의해 전파됐으며, 이탈리아에는 1468년 재배됐다는 기록이 있다.

▶아프리카에는 기원전에 인도에서 해로를 따라 동아프리카에 들어갔다는 설, 6~7세기경에 시리아로부터 이집트를 거쳐 모르코로 전파됐다는 설, 서부 해안저지에서 장기간 저장되다가 후일 대륙에 전파됐다는 설등이 있다.

▶브라질에는 16세기초 포르투갈인에 의해 전파돼 아마존강 유역에서 재배됐으며 남아프리카에도 이 시대에 전파됐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660년 버지니아주에서 도입해 시험재배됐지만 실패했고, 그 후 1699년 네덜란드 상선에 의해 마다가스카라산 볍씨가 차레스톤항을 통해 캐롤라이나주에 전해지면서 재배가 시작됐다. 루이지애나주에는 1718 년에 전파됐고 캘리포니아주에는 20세기초에 소개됐다.

동쪽으로는 육로 또는 수로를 통해 중국, 필리핀, 한국, 일본 등지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기원전 3000년경에 황하 중류지역에서 재배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나라시대(기원전2700년)의 5곡설 등으로 미루어 보아도 벼는 오래된 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벼농사는 원산지로부터의 전파설 또는 독자적인 발생설 등이 있다.

▶일본에는 기원전 1세기경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

▣ 한국으로의 전파

▶ 벼농사 기원에 관한 설

도작(稻作)농업이 중국 중원에서 동.남.서북으로 전파되었는데, 그 중 중원의 벼가 동쪽으로 흘러 한국에 전래된 것이 BC2300년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BC23세기경에 한강하류역에 전래된 벼재배문화가 중국의 산동반도를 낀 황하와 양자강 사이에서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굴된 볍씨의 유물로 보아 3가지의의통로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가장 오래된 한강 하류의 김포군 가현리와 고양군 일산읍에서 발굴된 볍씨로 보아 , 이곳과 가장 가까운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항로를 통해 한강하역으로 들어와 서북 해안변과 서남해안변으로 전파된 길 ②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항로를 이용해 가장 근거리인 만주의 遼東(요동)반도로 들어와 압록강을 건너 서남 해안변으로 전파된 길.

③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 육로로 발해연안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 서남 해안변으로 전파된 길.

▣ ▶한국에 벼농사에 관한 최초의 기록

《삼국지》위지 변진조에 ‘변진국들은 오곡과 벼재배에 알맞다’고 씌어있다.

《삼국사기》권23 백제 본기에 ‘다루왕 6년(33) 2월 나라의 남쪽 주군(州郡)에 벼농사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아 1세기에는 벼농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벼농사가 시작된 것이 기원전 1세기경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과거 중국문화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전파 과정으로 보아 한국의 벼농사 기원은 적어도 기원전 1세기경으로 보아야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휴한농법이 관행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고려시대의 벼농사

농무도감, 전농사 등의 권농관을 두는 한편, 1363년(공민왕 12)에는 제학 백문보(白文寶)가 수차의 보급을 건의한 것으로 보면 벼 농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재배면적이 증가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1391년(고려 공양왕3년)의 논 면적은 51만여 ha였다. < 조선시대의 벼농사>

한국은 조선 초기까지의 중국의《범승지서》·《제민요술》·《사시찬요》·《농상집요》등의 농서를 수집하거나《사시찬요》·《농상집요》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이를 국내에서 복간해 이용해 왔다.

따라서 고려말 이전의 한국의 벼농사가 어떻게 독자적으로 이루어져 왔는가 하는 기술적 내용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의 독자적인 벼재배법은 1429년(세종11)에 편찬된 《농사직설》종도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