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기슭 평지에 읶는 사찰이에요.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사찰로 백장암, 서진암 등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실상사를 지은 분은 홍척이라는 스님이신데, 중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신라에 돌아와 왕의 명에 따라 실상사를 세웠답니다. 홍척 스님은 그 후 선동을 공부하신 스님들 가운데 처음으로 국사 – 옛날 스님에게 내린 최고의 칭호 – 에 임명되었다고 해서 실상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실상사는 신라시대의 불교와 사찰의 모양을 잘 보야주고 있는 절로 임진왜란때 불에 타서 모두 없어졌지만 조선시대에 새로 지어져 현재에도 많은 불교 유물들이 많이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뮤물이 많은 절, 실상사를 둘러 볼까요….
실상사의 전설
지리산 실상사에는 일본과 얽힌 전설이 있서요…실상사 터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기운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누르고 있다는 이야기지요…실상사 보광전에 있었던 종에 일본지도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 스님들이 매일 종을 치면서 이 일본지도를 때렸다고 해요…
왜 지리산 깊은 곳에 있는 실상사에 일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오는 것일까요…
실상사 터는 백학이 내려앉은 자리라는데요. 학의 한 발은 극락정에 내려앉았고, 다른 한발은 보광전 쪽으로 내려왔대요…
그만큼 기운이 좋고 절 주변에 평평한 논밭이 2만평이나 돼 스님들이 살기에도 좋았서요..
그래서 고려시대 때는 스님들이 3000명이나 살았다고 하네요.
지리산에서 가장 큰 절이 실상사인데, 이터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연꽃처럼 생겼서요.
실상사 중앙에 목탑이 있었는데 이것이 연꽃의 꽃심이어서 돌이 아닌 나무로 탑을 세웠서요.
임진왜란 때도 일본군이 불질러서 숙종때 복원 해 좋앗는데 일제시대에 다시 불을 지른 거예요.실상사 터가 일본을 누른다는 전설이 일본인들을 자극해 터를 망치려 한 거였대요.
고려 말 나옹스님이 실상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기운이 흐르는 것을 보는데 지리산 기운이 일본으로 흘러가더래요.
스님이 그 기운을 막으려고 부연폭포에 큰솔을 집어넣으라고 시켰답니다. 그런데 이 솥이 1911년 장마에 강물을 타고 산청까지 떠내려가버렸서요. 이를 본 산청군수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부연폭포에 묻혀 있던 솥이었죠.
그래서 1912년 산청군수 , 함양군수, 남원군수가 합의해 다시 솥을 만들었서요.
그런데 그 솥이 하도 커서 장정 200명이 운반했답니다. 올해가 2004년이니 부연폭포에다 새 솥을 묻은 지 92년이 되었네요.
고려때 왜구가 경상도 진주로 들어와 황강을 타고 거슬러 올라오면 곧바로 지리산 실상사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해요.
왜구가 마천 쪽에 진을 치고 장기간 머무르기도 했다는 옛 이야기도 있지요.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면서 왜구대장 -아지발도-를 주인 곳도 남원의 인월 운봉근처예요.
실상사와 아주 가까운 곳이죠
지리산과 실상사는 고려 때부터 왜구와 격전을 벌인 곳이랍니다.경상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올수 있는 지리적 조건 때문었어요
또 실상사는 논밭도 그님등도 많으니 왜구와 맞서 싸우는 진지 역할을 했을거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일본을 누르는 풍수전설이 많이 생겨났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빈다. 부연폭포의 솥도 그런거예요.
지금 커다란 솥이 묻혀있는 부연폭포 옆에는 -부연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