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환경 e-mail)

2003년 6월 6일 | 활동소식






                                                                           옥미령(우리농촌살리기부산본부 생명공동체위원회 위원장)


<음식이 세상을 바꾼다>-시민 강좌 첫 번째 날. 10시다. 준비 땅! 근데…겨우 열 명 정도가 왔을 뿐이다. 어떻게 한다? 우린 10시 30분이라고 공지하던데? 누군가의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30분 동안 사람들을 더 기다릴 수 있다. 얼마라도 더 오겠지. 접수대 아래에 잔뜩 쌓여있는 워크북이 답답한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한다. 오랜만에 청명한 날씨도 괜히 원망스러워진다. 홍보를 하느라고 했는데 결과가 이렇다니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먹을 게 온통 못 먹게 되었으니 함께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것인데…속이 탄다. 바겐세일 한다면, 아파트 청약한다면 바글바글 몰려드는 그 많은 사람들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먹을 게 아무리 오염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보다. 하긴 이 무관심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런 저런 강좌를 마련할 때마다 겪는 똑같은 일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늘 속이 타는 것도 매 번 같고. 어차피 이런 쬐끄만 시도로 달라지지도 않을 세상을 향해 괜한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좌절감이 슬며시 든다.
10시 30분. 강사 선생님 앞에 띄엄띄엄 자리에 잡고 앉은 사람들. 강당을 더 크게 보이게 한다. ‘일 당 백이다.’이럴 때 스스로를 위로하느라 늘 하는 말이다. 언제나 시작은 미미한 것이고, 옳은 것이라면 결국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다시 확인하며. 올바른 음식이 ‘죽임’의 세상을 ‘살림’의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꿈은 꾸어 볼만한 꿈이라고. 수는 적지만 열의에 찬 이 사람들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밥이 다만 밥이 아니고, 사람이 되고 땅이 되고 하늘이 되는 것을 알아듣고 소리 소문 없이 그 깨달음이 퍼져나가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강의는 알차다. 산모가 아이의 건강을 만들고 태아의 건강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내용으로 실제의 예를 들어가며 조용조용 그러나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강의에 모두들 시선 집중이다. 아, 아깝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수도권의 내노라하는 유명 강사라면 많이 왔을까? 여기서도 역시 유명이 문젠가? 유명무실이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먹지 않고는 안되는 그 먹을거리, 그 먹을거리가 바로 되면 세상이 바로 될 수 있는데. 결국은 무관심이 질병과 죽음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텐데. 다들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강의를 주의 깊게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들.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 음식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큰소리로 동의하는 사람들. 적은 수지만 이 무명의 사람들이야말로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비록 기대한 사람 수에 언제나 못 미칠지라도 실망이 아니라 다시 내일을 기약하는 거다. 조바심 대신 충분히 기다리는 것, 축축한 곳에 곯아떨어지지 않고, 어두운 곳에 코를 처박지 않고, 새로워지기를 기다리며,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 속에서 할 수 있는 전부라던 시인의 목소리로 조바심과 답답함과 좌절과 체념을 지우고 희망의 작은 발자국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