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고속철도 공사 현장 기자회견을 마치고

2004년 3월 16일 | 공지사항

송진향이 가득한 공사 현장은 산 꼭대기로 가파르게 전개되어 있다.
뿌리째 뽑힌 소나무들이 능선을 따라 쌓여 있고 공사현장은 이미 생명을 뺏긴 흙들이 메말라 바람에 휘날린다.


먹구름 사이로 한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자 잠시 겁이 난다. 비가 쏟아지면 이 자리는 어떻게 되나? 한 줄의 테이프 선과 급경사에만 씌어진 허술한 초록 비닐이 그 아래 있는 스님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재판이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고속철도 공단은 급히 현장을 만들었고 현재 진입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고 있다.
그래서 지율스님은 재판판결을 기다리며 이곳을 지키겠다고 나섰고 도롱뇽의 친구들은 오늘 이것을 알리기 위해 모였다.
 

우리가 도롱뇽재판을 하고 현장을 사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천성산에 거대한 고속철도가 지나기기 위해 구멍을 뚫는 것을 막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서 보듯이 무법천지가 된 국책사업의 실상과 더 이상 보전을 위한 기관으로 보기 어려운 환경부와 같은 국가기관과 법, 그리고 돈을 위해서는 ‘도롱뇽은 없다’고 법정에서 거짓증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비양심성에 대항하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가 개발을 위한 면죄부가 되어 걸레조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수십년 된 나무들을 아무런 가책없이 쉽게 뿌리채 뽑아버릴 수 있는 인간의 생명경시와 기술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국민에게 한 약속인 선거공약조차 내팽개치며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며 웃을 수 있는 대통령의 윤리성 상실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현장 기자회견이 끝나고 위태로운 절개지 아래에 자연스럽게 스님을 중심으로 둥글게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천성산 계곡마다 알무더기와 새끼까지 부화한 도롱뇽 얘기로 이어진다.
봄기운이 물오르고 있는 현장에는 박새 한쌍이 가지들 사이를 바쁘게 오간다. 그리고 쌓여있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솔방울을 따기 위해 다람쥐가 분주하다. 그 곁의 아직은 뿌리를 흙에 딛고 있는 소나무를 바라본다.
자연의 섭리는 여전히 봄을 잉태하고 있고 우리의 미래세대도 가져야 할 소중한 환경이다.

“고속철도는 도롱뇽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