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율스님의 단식이 40일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 이런 극한의 몸짓이 아니면 받아들여질 수 없을만큼 서로에게 귀 막고, 눈 멀어 있는 것인지요. 몇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지상의 생명을 위한 일이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을만큼 우리 사는 땅은 닫혀있는 것인지요. 우리는 모두 이런 현실을 부둥켜 안고 울고 싶습니다.
아무도 바라지 않았지만, 아무도 붙들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의 침묵은 너무 길었고, 부끄러움은 더할 수 없이 깊어졌습니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들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이 땅의 모든 산과, 나무들과, 들꽃과, 벌레들과, 물소리들이 사람에게 생명 주는 일을 놓아버린다 해도 우리 모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목숨을 건 싸움이라고 하기엔 그분의 몸이 너무 작습니다. 하지만 스님께 왜 목숨을 건 싸움을 하시는가 물으면 아마도 스님은 할 수 있는 가장 단촐한 몸짓일 뿐이라고 마른 몸으로 웃어주실 겁니다.
간디는 행동이란 입으로 하는 것, 침묵을 지키는 것, 행동으로 해야할 것이 있지만,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이 지식으로 확인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율스님의 단식은 천성산이 없으면 도롱뇽도 없음을, 자연이 없으면 우리도 없음을 그 어떤 위대한 책보다 명확하게 읽어주고 계십니다. 스님이 보여주신 행동은 시간을 넘어 그 어떤 지식보다 따뜻한 지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 저희는 당신의 단식을 더 이상 허락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스님의 고귀한 의지를 막을 권한은 없지만, 스님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율스님, 부디 단식을 푸시고 우리와 함께 구차한 삶을 이어주십시오. 오늘도 말 없이 맑은 바람 품어주는 천성산을 위해, 어미 곁에 목 축이는 한마리 어린 도롱뇽을 위해 곡기를 이어주십시오.
그리고 정부는 부디 지율스님의 마른 몸짓을 읽어주십시오. 천성산에 사는 도롱뇽과 그 친구들의 작은 숨소리에 귀기울여 주십시오. 개발은 일부의 삶을 위해 모두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희는 우리 삶이 쓴 역사의 한 장에 죽음이 아니라 삶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모든 생물은 서로의 일부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작은 글씨로, 그러나 또박또박 쓰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긴 우주의 시간 속에 아름다운 이 땅과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003. 11. 13
풀꽃세상을위한모임